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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석사   2015-08-10 (월) 13:54
선과   707



 

 

여러번

아주 여러번 들린 선석사

그럼에도 조심스러워서 일까?

고향 절집이어서인지 오래전 대학노트에 남겨진 글만 있다.

 

건너 세종대왕자태실 글은 몇편 있건만...

 

 

하루가 멀다하고

전각은 물론이고 주차장  불사가 이루어졌고 진입로 공사도 현재 진행형이다.

 

고즈넉한 분위기는 남아 있으면 좋으련만.

 

루대가 없을적 여념집 대문 같았던 천왕문이 서 있었을 때는  기생 앵무. 달성과 더불어 대구 삼절인 석재 서병오의 선석사 현판이 걸려 있었다. 천왕문에 아직 걸려 있었던가? 이번에는 미쳐 살펴볼 생각을 못했다.

 

 

현재 선석사의 공간배치는 크게 2단으로 구획하여 넓은 공간을 확보한 하단에는 요사 정법료 템플스테이 수련관 태장전이 자리했다. 상단에는 대웅전 명부전 칠성각이, 뒤편에 산신각과 최근에 봉안한 석불좌상이 계신다.

 

선석사는 동화사 말사로 692년(효소왕 1)에 의상이 화엄십찰 중 하나로 창건하여 신광사라 하였으나, 현재보다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의 사적은 전하지 않으며 1361년(공민왕 10)에는 나옹이 신광사 주지로 계시면서  현재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전한다.  절터 작업중에 큰 바위가 나왔다 하여 터 닦을 선禪자를 넣어 선석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후 임란 때 전소된 뒤 1684년(숙종 10)에 혜묵惠默, 나헌懶軒 등이 중창하였다. 1725년(영조 1)에 서쪽의 옛터로 이건하였다가 1804년(순조 4)에 서윤瑞允이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고 대웅전 명부전 칠성각 산왕각 어필각 정법료 등의 당우를 갖추었다.

 

 

사찰이름의 유래가 된 선석바위

 

 

태봉

선석사는 태실의 원당사찰이었다.

 

 

태실

세종의 왕자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로 지정되었으므로 영조로부터 어필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어필을 보관했던  어필각은 화재로 전소되어 영조 어필의 병풍은 정법료에 보관되어 있다.

 

 

태실 법당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의 좋은 기운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염원을 모신 전각

 

 

대웅전

선선사의 주법당으로 2단의 기단위에 정측면 3칸의 겹처마 다포계 맞배지붕이다. 측면에 도리를 길게 빼고 방풍판을 걸었다.두리기둥, 어칸 4분합칸, 협칸 3분합의 창을 걸고 창살은 넉살문이다.

 

 

통나무를 잘라 속을 깍아내어 만든 법고. 시절 인연을 끝내고 물러서서 선석사 어르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웅전이면 서가여래삼존이 봉안되어야하는데 극락전의 주불이신 조선후기 목조아미타삼존불을 모셨다. 불단 뒤편 영산회상도가 1856년에 조성된 탱이므로 석가여래 삼존불을 봉안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아미삼존불은 그 이후에 조성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목조아미타불. 등받이 모양의 광배가 이채롭다.

나발에 중간계주.정상계주를 표현하였고 방형의 상호,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며 법의는 통견이다. 승각기의 매듭은 일자이며, 결가부좌에 아미타 수인이다.

 

 

대세지보살

연을 든 모습과 보관 보발 이외에는 본존불과 비슷하다.

 

 

관음보살

대세지보살과 지물로 든 연의 방향만 다를뿐 동일한 상이다.

 

 

 

대웅전 불단 후벽 영산회상도. 1856년에 조성되었다. 조성한 금어 등 조성기를 확인하지 못했다.

 

 

대웅전 측면의 1824년에 조성된 신중도

 

 

선석사 불단(수미단)

요즘에 무척 즐겨 읽는 일향 강우방선생님의 선석사 불단에관한 설명을 가져왔다.

일반적으로 안상으로 칭하는 불단의 문양을 일향선생님께서는 영기창으로 해석하셨다.

 

"아직도 ‘영기창이 무한한 우주 공간으로 통하는 아름다운 영기문으로 이루어진 창이라는 것과, 그 영기창을 통하여 만물이 화생하여 나타난다는 것’을 수긍하지 못하는 분이 계실 것이다. 고정관념이란 참으로 깨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상식이라고 알고 있는 것 가운데 얼마나 틀린 것이 많은지 모른다.

 

나는 어느 날 도록에서 선석사 불단을 보고 깜짝 놀라고 한편 매우 기뻤다. 마침내 영기창이 우주로 통하는 창이고 영기문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 영기창을 통하여 만물이 탄생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작품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석탑, 승탑, 불상대좌, 석등, 불단에서 많은 영기창을 보아 왔으며 그 영기창 너머로 무한한 우주 공간이 열려있다는 놀라운 진실을 알아 가고 있는 중인데, 왜 그런 영기창을 모든 장르에 베풀었을까. 영기창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기단부에 있다.

 

그리고 그 영기창에서 신장상이라든가 사자모습의 영수(靈獸), 비천, 보살 등이 역시 영기화생하여 나타나고 있다. 바로 그 기단부에서 그 위 부분 전체가 화생하는 극적인 장면이다. 즉 불상이나 불탑이나 승탑 등이 영기화생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아무 의미 없는 안상이라고 하면 그런 엄청난 광경을 상상할 수 없다. 영기창(靈氣窓)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임으로써 비로소 모든 장르의 개념을 올바로 정립할 수 있는 것이다.

 

경북 성주군에 자리 잡은, 세종대왕자태실의 수호사찰인 선석사(禪石寺) 대웅전의 불단을 찾아갔을 때, 영기창의 모든 문제를 일소하는 결정적 작품임을 직감했다. 각기 다른 영기문으로 구성한 다양한 형태의 영기창들 안에는 두 용의 모습이 부분적으로 보인다. 두 용은 보주를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는데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려보고 싶으나 영기창이 뚫린 판자를 떼어내야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삼천대천세계(우주)에 나는 두 용은 우주에 충만한 대생명력을 상징한다. 즉 용이란 존재는 우리가 지식으로 알고 있듯이 동물이 아니요, 대생명력을 구상화한 추상적 존재이다. 즉 인간은 예부터 그 보이지 않는 우주에 충만하되 보이지 않는 영기(靈氣), 즉 대생명력을 여러 가지 영기문으로 표현하여 왔으나 현실에 없는 것이매 무엇인지 몰랐다. 이제 그 보이지 않던 영기문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동안 써 왔던 중요한 용어들이 틀렸거나 아예 이름이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두 용이 마주 보고 있으나 아마도 몸은 순환하는 형태일 가능성이 많다. 대체로 보주를 가운데 두고 두 두 용이 회전하는 형상이 모든 장르에 많은데, 그것은 우주에 가득 찬 대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선석사 불단은 우주 그 자체이다. 구태여 말하자면 불단 안에는 영기가, 즉 대명력이 가득 차 있거나 물이 가득 차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물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은 대생명력을 상징하므로 영기가 충만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러한 불단을 옛 기록에 ‘佛卓’이라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기록하고 있으나, 고려시대의 작은 불탁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큰 규모로 전개하므로 불단(佛壇)이라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단의 넓은 앞면과 양 측면에 갖가지 영기화생하는 극적인 장면이 조각되어 있는데 어떤 형태의 경우에든 영기창에서 만물이 화생하는 광경이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가장 밑 부분에는 반드시 영기창에서 용이 화생하여 용의 입에서 갖가지 영기문이 양쪽으로 발산하고 있는데 이는 생명의 근원인 물에서 만물이 탄생하는 것을 상징한다. 그런데 아직도 사람들은 귀면(鬼面) 혹은 그것을 우리말로 바꾼 도깨비라고 부르니 통탄할 일이다. 그것은 여래를 보고 도깨비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그러한 불단 위에 무량한 여래와 보살이 영기화생하는 것이다. 비록 석가여래와 문수-보현보살 등 석가삼존이라 부르고 있으나, 실은 무량한 여래와 보살을 석가삼존으로 대표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여래와 보살은 원래 보이지 않는 대생명력, 즉 삼천대천세계에 충만한 생명을 구상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와 보살은 만물의 근원이다. 이제 불단과 여래-보살의 상관관계가 분명해 지지 않았는가. 불단과 불상 모두가 생명을 나타낸 조형 세계이다. 불교사상이 바로 ‘생명존중’의 사상이므로 불교미술의 조형에는 생명과 관련 없는 것이 없다."

 

 

불단 중앙. 2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두고 맞보고 있다.

 

 

우측 용

 

 

좌측 용

 

 

 

 

 

아미타불 대좌

 

 

관음보살 대좌

 

 

대세지보살 대좌

 

 

삼존불 천장

안상 밖으로 머리를 내민 용, 아래에는 몸통과 발가락을 표현하였다.

 

 

정법료 현판

정법료는 종무소를 겸한 전각으로 남천스님 글씨이다. 중수기로 추측컨데 1912~1913년 경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남천 광언 스님(1868~1936). 조선시대 고종 때 승려(1868∼1936). 성은 김씨, 법호 광언光彦, 합천 출신으로 십팔세에 해인사 신해信解에 출가하여 장섭仗涉의 법을 이어받다. 해인사 구광루 편액도 스님의 작품이다. 선종의 중앙기관인 선학원禪學院을 서울에 세운 스님이다

 

사찰문화재 총람에는 정법료에 아미타회상도가 보관되어 있다고 했지만 인연 짓지 못했다.

 

 

성주군선석사정법료중건기 현판 1913

 

 

정법료 마루에 자리한 동종. 사찰문화재총람에 의하면 1730년에 주조되었다고 한다.

 

 

음통이 없이 단룡으로 종뉴를 꾸몄다.

당좌는 물론 비천상 보살상등도 표현하지 않은 단순한 외형이다.

입상대는 미미하며 상대에는 특별한 문양없이 한 줄의 돋을 원으로 구획하였다.

 

 

종신 중대는 한줄, 세줄, 두줄 선으로 분활하였으며 중앙에 옹정팔년(1730년) 雍正八年銘?을 새겼다.

조선후기에 유행한 범자 문양 등의 일체 조식이 생략된 동종이다. 하대는 한 줄로 구획하였다.

 

 

산신각

단칸의 오붓한 모습과 민가의 창살을 닮은 띠살문 창살이 눈에 들어온다.

 

 

명부전

 

 

중앙이 잘룩한 대들보가 이채롭다.

 

예전에 우리카페 회원이며 고건축 복원을 전문으로 하시던 분의 말씀이 불현듯 떠오른다.

 

전각부재가 반듯하면 "돈으로 싸발랐구먼!" 

명부전 들보처럼 굽은 목재를 활용하면 "게을러 빠진 놈 같으니 좀 다듬지 않고..."

그런 유쾌한 독설이 그립다.

 

나주 동점문 복원 공사 이후 어디에 계시는지

연락이 닿지 않는다.

 

회원들을 마구잡이로 강퇴시킨 업보 일까?

 

 

명부전 벽화

 

 

명부전 지장보살상

 

 

조선후기 목조 시왕상

 

 

시왕뒤편 시왕도 1918년

 

 

지장보살도 1918년

 

일제강점기 시절 대대적인 불사를 하였는가?

 

 

칠성각

 

 

칠성탱 1918

칠여래와 일광, 월광보살을 묘사한 탱이다.

 

 

칠성각. 현왕탱(?) 1918

망자의 일생을 심판하시는 현왕탱이다.

 

 

독성탱. 근자에 조성한 탱인가?

 

출처...문화재청

 

마지막으로 나도 직접 보지 못한 영산회 괘불로 문화재청, 한민족백과사전 등의 자료를 참조하였다.

 

선석사 괘불도는 주상전하 및 왕비전하, 세자저하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며 1702년에 제작되어 경상우도慶尙右道 서진산 선석사에 봉안되었다는 조성기가 남아 있다. 조성기에는 90여 명이 시주하였고, 화원은 탁휘卓輝, 법해法海, 설잠雪岑, 성징性澄 등 네 명의 금어이다. 성징은 선석사 괘불도보다 1년 앞서 제작된 상주 남장사 감로탱(1701년)에 탁휘 등 7명의 화원과 함께 참여했다. 1705년 용문사 괘불도 제작에도 참여하였는데, 용문사 괘불도는 4명의 제자가 2명으로 줄어든 것을 제외하고는 선석사 괘불도와 형식 및 양식적 특징, 심지어는 90여 명의 시주자에 이르기까지 거의 동일하여, 선석사 괘불도의 초본을 기본으로 하여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수화사 탁휘는 1650년 갑사 괘불의 화원으로 참여하였고, 상주 남장사 감로탱(1701년)에 성징과 함께 참여하였다.

 

중앙 석가모니불은 녹색의 두광, 신광에는 불꽃문이 둘러쌓여 있다. 상단에는 구름문이 보인다. 나발에 중간계주, 육계, 정상계주가 있다. 상호는 방형으로 활형 눈썹, 치켜 뜬 눈, 작은 입 등이 특징적이다. 목에는 삼도 그려져 있고 귀는  길게 늘어져 있다.  오른손은 어깨높이로 올려 연꽃을 잡고 있고 가슴 아래에 위치한 왼손은 엄지와 장지를 맞대고 있다. 법의는 화려한 문양의 대의를 양 어깨에 걸친 통견이다. 대의의 가장자리는 녹색 바탕에 금니로 연화당초문을 표현하였으며, 붉은색 대의의 바탕에는 다양한 원문을 금니로 그렸다.

 

좌우협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화염보주로 장식된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두 손으로 긴 연꽃가지를 들고  정면을 향해 서있다. 얼굴은 본존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다리를 약간 벌리고 서있는 보살의 뒤로는 훤히 비치는 검은 망사형의 두광이 둘러져 있다. 보살 위에는 각각 가섭존자와 아난난존자, 두명의 나한?(사리불, 목건련존자)이 작게 표현되어 있다.

 

괘불도는 보통 석가의 설법 모임을 도설한 「법화경(法華經)」 서품(序品)의 광경을 장엄하게 묘사한 영산회상도와 달리 오른 팔을 어깨까지 들어 올려 분홍빛의 연꽃을 잡고 있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 보현보살을 배치한 삼존불 형식에 가섭과 아난 등 4제자만을 묘사한 간략한 형식의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석가모니가 연꽃을 들고 있는 도상은 영축산에서 세존(世尊)이 대중들에게 꽃을 들어 보이자 오직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는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를 상징하는 것으로, 흔히 염화불이라고 부른다.

 

연꽃을 든 석가모니불 도상은 1622년 청계사에서 간행된 『묘법연화경』과 1655년 법주사에서 간행된 『묘법연화경』 변상도에도 보이며, 괘불도 중에는 1705년 용문사 괘불도를 비롯하여 남장사 괘불도(1705년), 봉은사 괘불도(1886년), 개운사 괘불도(1897년) 등에서 볼 수 있는데, 괘불도에서 여래형의 석가모니가 꽃을 들고 있는 모습은 선석사 괘불도가 가장 이른 시기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선석사는 세종대왕 자태실을 답사하는 사람들의 동선에 포함될 가능성이 짙다. 따라서 보물로 지정된 괘불, 유형문화재 대웅전 외에도 대웅전의 후불탱, 신중탱. 수미단. 명부전의 탱화, 시왕상, 칠성각의 탱화, 정법료 현판, 동종, 아미타탱은 시급히 문화재로 지정하여 많은 사람들게 알려야 한다. 일부 답사객에게 회자되는 문화재는 사찰의 사격에 도움이 미미할 뿐이다.현재 인기리에 진행중인 템플스테이는 물론이고 선석사가 널리 홍보되어 우리나라 최대 태실의 원당사찰 위상을 찾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성주군의 생명문화 축제기간중에는 괘불탱을 노천에 걸었으면 좋겠다는 원을 세우 본다.

 

201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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